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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시의사회 발자취

순천시의사회 발자취

유서 깊은 순천지역에서 역사적인 소명과 사명감으로 일하고 있는 개원의사만해도 2001년 4월1일 현재 119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순천지역의 의료기관의 뿌리를 사료와 구전에 의거하여 1975년을 싯점으로 정리해 봄으로서 이 자료가 순천시의사회의 연혁에 디딤돌이 되고 오늘의 우리를 돌아보는 거울이 되었으면 합니다. 사료는 이순탁(평화의원)원장이 귀하게 보관해 온 1975년 2월 27일 순천문화원에서 발행한 ‘순천. 승주 鄕土誌’ 및 구술 자료와 순천시청 시넷 자료실에 근거하였음을 밝히며 지면을 통해 감사를 드립니다. <편집자주>


日帝때에는 순천시내에 도립 순천병원 외에 선교사들이 운영하는 안력산병원과 일본인 의원이 3개, 한국인 의원이 4개가 있었다.

승주군내에는 공의가 하나 있었을뿐 산재해있는 한의원외에는 의료기관이 없었다.

해방 후에는 일본인 의사가 退國하고 한국인 의사가 모자라 의료공백상태가 이루어졌다가 6.25 동란 후 부터 점차 병원이 늘어나 1975년 순천시와 승주군에 24개의 병원으로 늘어났다.


1. 안력산 병원[安力山病院]

순천에 선교사가 처음 들어온 것은 宣敎師들이 목포로 입국, 광주를 거쳐 1911년경에 들어왔다. 순천에 주재한 선교사들은 첫째로 선교사 자신들을 위함과 동시에 의료사업

으로 전도의 문을 열기 위해 1915년 현 매산 고등학교 은성관 자리에 안력산 병원을 세웠다. 안력산병원은 미국인 선교사 알렉산더(한국명 安力山)에 의하여 창설된것이다.

초대 원장에 티몬이 재임하였고 다음으로 로저스(한국명 魯濟世)원장이 취임하였는데 병원이 이때부터 유명해졌다. 한국인 조수도 약간명 있었고 간호원도 수십명에 달하였다.

당시 日人들에 의해 경영되는 도립순천병원은 찾지 않고 안력산병원에만 盛市를 이루어 전남, 전북등지는 물론 멀리는 경상도에서도 찾아와 치료를 하였다. 당시 우리나라는 샤머니즘의 굴레 속에서 病의 원인과 결과를 알길이 없던 우리 선인들은 맹장염같은 것을 雜神이 덮쳤다고 괭가리와 북을 치며 무당의 祝文에 소생을 바랐던 것이었다. 이같은 인습에 젖은 많은 사람들은 西洋醫師가 배를 열고 수술하는 것에 대경실색을 하였다. 그러나 차차 이를 계몽과 교육을 통하여 매년 수만의 환자를 치료하였고 무료치료를 실시하여 많은 혜택과 복음을 전하기도 하였다.

의료기관과 교육기관으로의 역할을 하여 순천지역에 개화의 물결을 빨리 일으켰고 순천이 문화의 先見地로서의 구심적 역할을 한 셈이다. 日帝는 선교사들을 주목하고 미행하였고 1940년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1940년 11월 병원경영자가 본국의 소환에 의해 귀국함에 따라 자연히 병원이 폐쇄되었다. 당시를 회고하는 이 고장 노년자들은 順天하면 安力山病院으로 이름났던 긍지와 자랑을 잃지 않고 있으며 의술의 德을 펴고 神術처럼 병을 고치던 안력산병원을 神話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2. 道立 順天病院

지방에서는 공공보건시설의 혜택을 보지 못하다가 韓末以來 신문물의 유입과 동시에 신의술이 수입되면서 의료시설이 보급되기에 이르렀는데 순천에도 도립병원으로서는 전남에 제일 먼저 세워졌을 뿐만 아니라 의술의 보급과 이 고장의 보건에 획기적인 공헌을 남겼다.

1919년 2월 매곡동 130번지에 부지 7,015평으로 全羅南道立 順天病院이 창립되었다. 1945년에 신본관이 증축되었다가 1951년 3월 6.25당시 공비의 습격으로 소실되었다가 1962년 11월 신본관하층이 복구되고 1971년 12월 신본관 2층병실이 개축되었다. 시설규모는 진료과 ; 내과, 외과, 소아과, 안과, 이비인후과, 산부인과, 건강관리과, 병리검사실, 방사선과가 있었고 비진료과 ; 약제과, 서무과, 가족계획 연구과, 모자보건과, 결핵요양과로 인가병상은 77개 병상이었다.

직원으로는 김동진원장[외과전문의)외 의사 4인, 간호원 5명, 약사 1명, 방사선사 1명, 병리검사 1명, 사무원 4명, 간호보조원 3명등이 있었다. 순천지역의 유일한 종합병원 으로 위내시경, 심전도계, 조산아보육기, 특수촬영기, 각종 병리검사기등 최신의료장비를 구비하고 각과의사들도 모두 전문의로 구성되어 있었다. 관내(2시7개군)도민의 건강을 위하여 수시로 무료 순회진료를 실시하고 생활보호대상자에게는 전원 무료치료를 하는 公共의료기관이었다.


3. 順天鐵道病院

1937년 7월 10일 순천철도진료소로 개설되어 철도에 종사하는 직원과 가족 및 부상여객의 진료를 위해 조곡동 철도관사촌에 세워졌다.

당시에 내과, 외과, X-Ray, 약국, 병실등 9개실과 의사 2명, 약제사 1명이 있었다. 1948년 7월 25일 순천교통병원으로 개칭되었다가 1963년 9월 3일 철도청 신설과 함께 순천철도병원으로 다시 바뀌었다.

해방전에는 日人들에 의하여 활발히 운영되다가 해방후 종사자는 늘어나고 병원이용자는 줄어들고 저렴한 치료비로 인하여 운영난을 겪어오다

1972년 2월 전국지방철도병원은 일제히 폐쇄되었다. 폐쇄후 순천시내 일부병원을 철도위촉병원으로 김은수외과의원, 정의원을 지정하여 치료케하였다.


4. 성가롤로의원

장천동 44번지에 1969년 11월에 말끔하게 세워진 병원으로 천주교에서 附帶事業으로 세워진 것인데 설립자는 독일 聖가롤로 보로매오 修女院이며 내과, 외과, X-Ray과, 임상병리과가 있었고 친절하고 의약품이 좋기로 이름나 있었다.


5. 順天基督診療所

1962년 기독교선교부에서 선교사업으로 시작한 의료기관으로 순천흉곽내과진료소로 출발하였다. 광주기독병원의 분원으로 진료사업을 하다가 1973년 12월 20일 재단법인 순천기독재활원으로 결핵환자들의 진료를 위하여 매곡동 169번지에 설립허가를 받았다가 1974년 9월 3일 김형모목사가 재단법인 광주기독병원순천결핵진료소로 설립허가를 다시 받았다.

의사는 광주에서 매주 금요일마다 來順하여 치료에 임하고 간호원은 상주하고 있다. 시내 조례동에 요양원이 있어 60명 정도가 선교회를 통한 결핵치료에 도움을 받고 있다. 또한 해룡면 호두리 금단부락에 요양원을 설립하여 무의탁 결핵환자들을 약40여명 수용하여 치료하고 있다.

인애자(미국명 Lois F. Linton)원장은 지난 40여년을 한국의 결핵환자를 보살피는데 헌신한 결핵환자의 어머니이다. 인원장이 태어난 Linton가는 지난1백년 동안 한국에서 선교, 교육, 의료사업을 펼쳐온 가문으로 인원장도 일찍이 한국에서의 봉사를 하나님이 주신 소명으로 생각해왔다. 지난 1954년 남편 인휴(Hugh M. Linton) 목사를 따라 한국에 온 인원장은 광주 제중병원에서 그 무렵만 해도 사형선고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던 결핵환자들이 열악한 의료 환경 속에서 지내는 것을 보고 결핵의 퇴치와 결핵환자의 재활에 평생을 바칠 것을 결심했다. 현재 순천 기독결핵재활원의 원장으로 재직하며 남편 인휴 목사와의 사별의 슬픔도 잊고 오늘도 1천명이 넘는 결핵환자들의 재활을 위해 자신의 삶을 아낌없이 바치고 있다.


1. 일제시대 개화전

민간의료와 한방진료에 의존했던 순천지역에 1911년경 의료선교를 위해 미국선교사들이 목포, 광주를 거쳐 들어오면서 본격적인 서양의학이 전해졌다. 1915 안력산병원(미국 선교사 알렉산더(安力山), 현 매산고 은성관 자리에 설립)이 세워져 1940년 11월 태평양전쟁 발발로 폐쇄되기까지 초대 티몬원장에 이어 2대 로저스(魯濟世)원장 때부터 전,남북 순천 인근뿐만 아니라 멀리 경상도에서도 수술을 위해 찾아와 성시를 이루는 중추적 의료기관이었으며, 1919년 전남 제일의 공공의료기관인 도립순천병원(현 순천의료원)이 세워져 유일한 종합병원으로 신의술보급과 이 고장의 보건에 획기적인 공헌을 하였으며, 철도의 중심도시답게 1937.7월 순천철도진료소로 출발하여 해방후 1948년 순천교통병원 1963년 순천철도병원으로 1972년 폐쇄되기까지 순천지역민 진료에 한 축을 맡았으며, 일제시대에는 개인의원이 일본인의원 3개, 고산의원(최정완원장 1943~1980년, 2001년 10월 26일 作故), 남산의원(임영호원장/作故), 이내과의원(이주달원장/作故), 중앙의원[정인대원장/作故] 등 한국인의원 4개가 있었다.


2. 해방후 시기

1945년 해방과 함께 일본인 의사가 퇴국하고 한국인 의사가 모자라 일시적인 의료공백상태가 이루어졌다가 1950년 6.25동란후부터 병원이 늘어났다. 1962년 당시 만연된 결핵진료를 위해 순천흉곽내과진료소로 시작하여 1973년 순천기독결핵재활원로 설립되어 오늘에 이르도록 이지역 결핵치료에 선도적인 역활을 하고있으며, 1969년11월 구도심 장천동에 독일 聖가롤로 보로매오 수녀원에 의해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웃의 쉼터로 설립된 성가롤로의원이 내실 있는 발전을 거듭하여 1995년 1월 시.군 통합(순천. 승주)과 광양제철 배후거점도시로 순천시가 동천을 넘어 신도심개발이 이루어지면서 광양, 여수, 순천 신도심의 중심축에 1998년 5월 지하1층 지상 10층 700여 병상규모의 최첨단 인텔리젼트 빌딩으로 이전 개원하여 2000년 인턴. 레지던트 수련교육병원으로 전남 동부지역 의료문화를 선도하는 새로운 메카로 발돋움하였다.


3. 발전시대

6.25동란의 폐허를 극복하며 1970년대 산업개발이 본격화되어 경제발달과 함께 의료수요가 늘어나고 서울소재 의대와 함께 지역에서 전남의대에 이어 조선의대, 전북의대에서 의사가 배출되기 시작하여 1975년경에는 순천시와 승주군에 병. 의원이 24개에 이르렀다.

입원실과 응급실을 갖춘 병원급 의료기관이 80년대 이후 활발하게 개설되어 1985년 5월 광양, 여천일대 산재환자를 위한 순천병원,

1987년 12월 남순천의원, 1989.2월 중앙병원이 80년대에 개원하여 현재까지 역활을 하고 있으며, 90년대 광양제철, 여천산단 배후도시로 신도심 개발과 함께 아파트중심 젊은 세대로 인구증가 및 이동이 일어나 1996.3월 여성전문병원인 현대병원, 1997.5월 정형외과전문병원 오병원, 1998.1월 각과 전문의들이 공동개원한 한국병원, 1998.5월 금당병원이 신도심을 거점으로 개원을하여 상호협조와 선의의 경쟁으로 순천과 인근지역에 양질의 의료를 베풀고 있다.

병.의원 설립의 형태가 특성화된 전문과목과 공동개원이 나타나기 시작하여 2000년 의약분업과 함께 더욱 자리메김을 하고 있으며 개원가와 약국이 의약분업과 함께 크게 이합집산을 한것도 커다란 변화이다.

1997.12월 중앙병원을 필두로 한방병원과 협진체계를 갖춘 양.한방 협진병원이 새로운 의료체계를 이루며 1999년 4월에는 동신대한방병원이 양.한방협진체제로 개원하였으며 2000년.5월에는 순천병원도 원광대한방병원과 협진체제를 시작하였으며 또한 기존의 어두운 영안실을 벗어나 넓고 깨끗한 장례식장을 병원들마다 부대시설로 확충하여 가정중심의 장례문화가 병원중심으로 바뀌고 있다.


4. 순천시의사회

1950년대부터 평화의원(이순탁 1955~현재)등 개원의사를 중심으로 친목수준의 의사회모임이 태동되어 내려오다 의사회조직을 갖춘 시기는

1960년 5.16군사혁명 이후 민의원(민경봉,안과,1963년~ 폐업)원장이 1963년 초대총무를 맡으면서였다.

70년대 이후에는 개원서열에 따른 회장-총무체제 중심의 의사회가 회장의 병원에 의사회를 두고 병원직원이 회람을 돌리는 체계였다가 90년대 이후 회원이 늘어나고 회무도 많아져 사무간사를 보조로 회무와 애경사등 친목을 도모하여 왔는데,

최근 김봉환, 최경철, 김종택, 김종영, 정용운, 김성균, 김창수, 설종은원장까지 개원서열로 회장직을 맡아왔다. 하지만 1990년대 정치적으로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각 사회마다 민주화 바람이 불고,

2000년 7월 의약분업이라는 새로운 의료체계에 대한 적응과 의권투쟁의 과정을 거치면서 의사회의 조직역량 강화와 회원이 참여하는 회무를 위해, 전남 최초 및 전국에서도 드물게 총회(회장 설종은, 설산부인과)를 통해 결의되었던 회장직선제를 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 유대규외과)가 구성되어 일정에 따라 2001년 2월 9일 첫 회장직선제투표를 실시하여 순천병원 재직후 1987.2월 성모내과를 개원한 성병현원장이 당선되어 2001년 2월 27일 낙원회관에서 정기총회를 갖고 직선회장에 취임하였다. 직선회장체제에서 노. 장. 청을 연결하는 실무 화합형 이사진(총무 구희윤 이비인후과)이 구성되어 사업계획과 수입.지출예산을 문서화하고 사안에 따라 능동적으로 임시이사회와 매월 정기적인 이사회를 열어 회무를 진행하고 있으며 정관개정(법제이사 임종채 내과)을 하여 새 회칙에 의거하여 직선제규정, 병원을 포함한 회원자격규정과 회비조정, 윤리위원회(위원장 정용호내과)를 설치하여 내적 자율정화에도 힘을 쏟고 특별위원회규정을 두어 의약분업소위원회를 구성하여 처방약품목록 작성등 새로운 의료체제를 대응하고 있으며 늘어난 회무를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사무간사를 사무국장(이정욱)으로 승격하고 2001년 4월 조례동 명인빌딩3층에 숙원이던 자체 의사회회관을 마련하였고, 회보편집위원회(편집장 서종옥 남순천의원·내과)를 구성하여 격월간으로 ‘순천시의사회보’를 창간하여 의사회 발전의 초석을 놓았다. 2001년 12월 현재 개원의 120여명, 병원의사 130여명으로 약 250명이 순천시의사회원으로 등록되어 있으며, 순천시의사회에서는 225명의 유권자중 150(67%)명이 참여하여 2001.10.20일 역사적인 대한의사협회 직선회장 당선자로 세명의 지삼봉,윤철수,신상진후보중 변화의 새 바람을 염원하는 회원들의 여망에 따라 신상진후보가 결정된 다음날인 2001년 10월 21일에는 서로의 단합과 가족간의 친교를 위한 제 1회 ‘순천시 의사의 날’을 순천공고 체육관에서 뜨거운 참여로 의미있게 치루어 지속적인 의사회의 단합과 발전을 위한 성공적인 발판을 마련하였고 이어 12.4일 부부 및 가족동반 송년의 밤이 준비한 자리가 부족할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다. ??한편 1987년 광주시의사회와 분리되면서 목포,1997년 여수에 이어 전남 도의사회가 2000.3.18 화순금호리조트에서 54차 정기대의원총회를 통해 제6대회장에 위각환회장(총무 김용주정형외과)-박종대의장체제가 되면서 원활한 회무를 위해 전남도의사회관이 순천시 중앙동 99번지로 이전되어 순천시의사회가 주축이되어 도의사회를 이끌어가고 있으며 2001.9월 김용주총무이사가 순천의료원장에 취임함에 따라 김종택정형외과원장이 맡고있으며 2001.4월 도의사회 홈페이지(www.kma061.or.kr)를 개통·2001. 9. 회원명부 발간(공보이사 정종승가정의학과)하여 각 시.군을 연결하여 회무를 극대화시키고 있다.


5.대한의사협회 연혁

1908.11.15 한국의사연구회 창립, 1915.12.11 한성의학회 창립, 1930.2.21 조선의사협회 창립, 1947.5.10 조선의학협회 창립, 1948.5.10 의학협회지 창간, 1949.7.9 대한의학협회 개칭, 1993.10.4 의협통신망(kmain)개설, 1995.5.26 대한의사협회 개칭, 2001.7.28 의협회장 직선정관개정, 2001.10.20 의협직선(우편투표) 당선자공고 및 10.27일 직선회장 취임.


6. 순천시, 승주군 관내 병.의원 현황[1975년/2001년 12월 현재]
평화의원[이순탁,내과,1955년 개원/現在] 순천시 영동

민의원[민경봉,안과,1963년 개원/閉業] 순천시 매곡동 강산부인과의원[강창원,산부인과/閉業] 순천시 남내동

고산의원[최정완, 1943년/1980년 閉業/2001.10作故]-순천시 장천동

정의원[정양원, 철도병원/閉業] 순천시 장천동

남산의원[임영호,해방전 개원/作故]

중앙의원[정인대,해방전 개원/作故]순천시 매곡동

장외과의원[장동민/作故]

혜인의원[모경연/ 일본거주]

서울산부인과[박영주/作故]

정희봉산부인과[정희봉/ 閉業]

이내과의원[이주달,내과,해방전 개원/作故] 순천시 행동

부인의원[박순환,산부인과/1968~現在-박순환의원] - 순천시 행동 김이비인후과의원[김희두,이비인후과/1964~現在] - 순천시 장천동 순천정신신경과의원[정영환,정신과/閉業] - 순천시 남정동 김은수외과의원[김은수,외과/閉業] 순천시 장천동

종산의원[최상기,피부과/作故] 순천시 남내동

박소아과의원[박종대,소아과/1970~現在] 순천시 행동 김학철의원[김학철/閉業·남해화학 의무실] 순천시 장천동

서울의원[한평옥/作故] 순천시 동외동 성가롤로의원[김명환,외과/광주,김명환외과~現在]- 순천시 장천동 성가롤로의원[정용호,내과/정용호내과~現在]- 순천시 장천동

김창은외과의원[김창은,외과/ 순천병원, 승주보건지소~現在] - 순천시 행동 순천도립병원[최홍기,안과/閉業] 순천시 매곡동

순천도립병원[김동진,외과/ 순천병원, 한국병원~現在]

순천도립병원[박상수,산부인과/?]

오산부인과의원[오종건/作故]순천시 중앙동

위정형외과[위각환,정형외과/現在]순천시 중앙동

남부의원[이의록/作故, 임인섭/現在]별량면 봉림리

화평의원[국순홍/?]주암면 구산리


[‘뿌리를 찾아서’ 연재를 마치며]5회에 걸쳐 순천지역 의료계의 뿌리를 거슬어 올라가보며 2001년 현재의 상황에서 정리해보았습니다. 객관적으로 기록된 자료가 열악하여 사료와 구전, 구술에 의거하다보니 검증받을 부분이 많을 줄로 여겨집니다. 이를 토대로 시간을 가지고 고증하면서 순천시의사회의 연혁과 앞으로의 발전에 밑거름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동안 이 작업에 도움을 주신 원로회원님들과 각 병원홍보과, 그리고 순천시청홍보과와 기억을 더듬어 증언을 해주신 지역민 김복수, 조규록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전남 순천시 공마당길 97 (인력산 의료문화센터) / Tel : 061-724-7585 / Fax : 061-722-2439 / 대표 : 서종옥 / 정보이사 : 김성득 / 사무국장 : 이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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